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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돌 예배당의 바닥으로 목소리 하나가 천천히 내려간다. 그런데 그 선율은 발 디딜 데를 찾지 못한 사람처럼, 멈출 만한 자리에 이르러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풀려나간다. 오케겜을 처음 들을 때 가장 먼저 붙잡히는 것이 이 감각이다. 어디서 한 악구가 끝나고 어디서 다음이 시작되는지 좀처럼 짚이지 않는, 이음매 없는 긴 선. 그 선은 자주 보통보다 훨씬 낮은 데까지 가라앉아 발밑이 꺼지듯 어두운 저음의 바닥을 만든다. 또렷한 마디로 끊어 부르는 음악에 익숙한 귀라면 붙잡을 손잡이가 없어 당황스러운데, 그 당황이야말로 입구다.
그가 저음을 그토록 깊이 파고든 데는 까닭이 있다. 오케겜 자신이 이름난 저음 가수였다고 전해진다. 남들이 잘 딛지 않던 낮은 음역까지 제 목소리로 밟아 본 사람이 그 영역을 작곡의 토대로 끌어올린 것이다. 프랑스 왕실 예배당의 성가대를 오래 이끌었고 투르의 한 수도원에서 재정을 맡는 자리까지 올랐지만, 정작 그가 남긴 음악은 지금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미사 열몇 곡과 샹송 스무 곡 남짓, 모테트는 열 곡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떠났을 때 시인들과 다음 세대 음악가들이 앞다투어 애도의 노래를 지었고, 그 하나가 조스캥의 <숲의 요정들>이다.
오케겜의 문법은 하나의 역설 위에 서 있다. 겉으로는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흐르는 소리인데, 안쪽은 극도로 엄격한 규칙으로 짜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캐논이다. 한 사람의 선율을 다른 사람이 시간차를 두고 뒤따르는 방식을 그는 아무도 가 보지 않은 데까지 밀고 갔다. <미사 프롤라티오눔>에서는 악보에 선율을 한 줄만 적어 두고 그 한 줄을 서로 다른 박자 단위로 읽게 한다. 같은 음표들이 어떤 목소리에서는 빠르게, 어떤 목소리에서는 느리게 풀려나오면서 함께 출발한 선들이 조금씩 벌어진다. 한 악장 안에서 이런 캐논이 동시에 두 겹으로 겹치고, 네 목소리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같은 재료를 노래한다. 듣는 이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 흐름은 실은 계산으로 지은 건축이다.
들어가는 문은 <레퀴엠>이 좋다. 오늘날 전하는 가장 오래된 여러 성부의 진혼 미사로, 그 어둡고 낮은 울림과 멈추지 않는 선율을 가장 순하게 만날 수 있다. 카펠라 프라텐시스(Cappella Pratensis)나 에드워드 위컴이 이끄는 더 클럭스 그룹(The Clerks' Group)의 녹음이 믿을 만하다. 두 번째는 <미사 프롤라티오눔>이다. 처음에는 설명 없이 흐름으로 듣고, 그다음에 이것이 한 줄에서 갈라져 나온 캐논임을 떠올리며 다시 들어 보라. 같은 곡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이 곡 역시 더 클럭스 그룹의 녹음이 길잡이로 좋다. 여력이 남으면 스콧 메트카프의 블루 헤론(Blue Heron)이 녹음한 세속 샹송으로 건너가, 예배당의 저음에서 벗어난 같은 손의 더 사적인 선율을 들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