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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의 음악에서는 어떤 음도 우연히 놓이지 않는다. 스트라빈스키는 그를 두고 '가장 완벽한 스위스 시계공'이라 했는데, 이 말은 절반만 맞다. 톱니처럼 맞물리는 정밀함은 분명 그의 표면이지만, 잘 닦인 유리 아래에서는 늘 무언가가 뜨겁게 움직이고 있다. 흔히 드뷔시와 묶여 불리지만 두 사람의 소리는 반대 방향을 본다. 드뷔시가 윤곽을 물에 풀어 흐리게 만든다면, 라벨은 모든 선을 끝까지 깎아 날을 세운다. 그의 관현악이 안개가 아니라 세공된 보석처럼 들리는 이유다.
마흔을 앞두고 그는 전쟁에 자원했다. 비행사를 지망했다가 약한 몸 탓에 거절당했고, 결국 군용 트럭 운전병이 되어 베르됭 전선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밤길에 탄약을 실어 날랐다. 병을 얻어 후송된 이듬해 초, 평생 결혼하지 않은 그의 가장 깊은 애착이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 이중의 상실 뒤에 나온 '쿠프랭의 무덤'은 전사한 친구들에게 한 악장씩 바친 곡이지만, 장송곡 대신 우아한 옛 춤곡의 옷을 입고 있다. 슬픔조차 정장을 갖춰 입혀 내보내는 것, 그것이 균열에 대한 라벨의 대답이었다.
그의 문법은 리듬에서 시작된다. 집요하게 반복되는 리듬형이 바닥에 깔리고, 클라이맥스는 연주자가 감정을 쥐어짜서가 아니라 악기가 하나씩 쌓이는 축적으로 온다. 뼈대는 대개 춤이다. 파반느와 미뉴에트 같은 옛 궁정 춤, 왈츠,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자란 어머니가 물려준 스페인의 리듬. 선율을 어떤 악기에 맡기는지도 그를 알아보는 표지다. 태엽 장난감과 시계로 가득했다는 그의 집처럼, 음악은 기계적으로 반복되며 최면을 걸고, 그 위에서 아주 가끔 선율이 휘어진다. 바로 그 순간이 라벨이 감정을 허락하는 자리다.
입구로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좋다. 호른이 노래하는 첫 선율에 그의 억제된 서정이 원형 그대로 담겨 있다. 다음은 피아노 협주곡 G장조. 2악장의 끝없이 이어지는 선율은 즉흥처럼 들리지만, 마디마디 쥐어짜듯 썼다고 초연자 마르그리트 롱에게 털어놓았다고 전해진다. 재즈가 스며든 양끝 악장까지, 만년의 라벨이 한 곡에 다 있다. 마지막이 '볼레로'다. 두 선율이 반복되는 동안 바뀌는 것은 오직 악기의 옷뿐인데, 정작 그 자신은 '음악 없는 관현악 실험'이라 불렀다. 앞의 두 곡을 거쳐 왔다면, 이 반복이 지루함이 아니라 설계라는 것을 귀가 먼저 알아차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