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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9년 봄, 아직 정식 초연도 하지 않은 신작의 공개 리허설을 들으려고 런던 시민 1만 2천여 명이 복스홀 정원으로 몰려들었다. 템스강을 건너는 유일한 통로였던 런던 브리지가 세 시간 동안 마비됐다. 불꽃은 아직 터지지 않았고, 사람들을 부른 것은 오직 그 음악이었다. 이 장면이 그의 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그대로 말해준다. 실내가 아니라 야외로, 한 사람이 아니라 군중을 향해 열리고, 처음 듣는 순간에 효과가 도착하는 음악. 그는 청중을 앉혀두고 설득하는 대신 광장으로 끌어낸다.
런던에서 그의 삶은 수입된 사치품 위에 세워져 있었다. 화려한 무대와 스타 가수를 앞세운 이탈리아 오페라. 그러나 1730년대에 그 사업은 무너져 내렸다. 관객은 빠져나가고 경쟁 극단이 재정을 갉아먹었으며, 1737년에는 몸까지 부서졌다. 뇌졸중으로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된 그는 아헨의 온천에 몸을 담그며 회복했고, 반년쯤 뒤 다시 오르간 앞에 앉았다. 돌아온 그는 저무는 오페라를 붙들지 않았다. 대신 영어로 부르는 종교극, 오라토리오로 방향을 틀었다. 값비싼 의상도 무대장치도 없이 합창을 무대 한복판으로 끌어낸 형식이다. 파산의 언저리에서 나온 이 전환의 끝에 '메시아'가 있다. 착상부터 완성까지 단 24일이 걸린 악보다.
무엇을 들으면 '아, 이 사람'인가. 먼저는 의례의 광채다. 두꺼운 합창, 트럼펫과 팀파니, 눈부신 장조. 그러나 더 정확한 지문은 소리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아끼고, 쌓고, 한꺼번에 쏟아붓는다. '사제 사독'은 관현악이 나직이 물결치며 차오르는 화음을 스무 마디가 넘도록 끌고 간 뒤에야 합창 전체가 단 한 단어 위로 무너지듯 쏟아져 들어온다. 긴 접근과 갑작스러운 군중의 도착, 이 한 방이 그의 서명이며 '할렐루야'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선율은 길고 자연스러워 한 번 들으면 따라 부를 수 있고, 그는 빠르게 썼으며 자기 것이든 남의 것이든 거리낌 없이 가져다 다시 썼다. 동시대의 바흐가 악보를 파고드는 이에게 보답하는 대위법의 구조물을 안으로 세웠다면, 그는 몸짓을 객석 쪽으로 겨눈다. 한목소리로 말하는 군중으로서의 합창이다. 그리고 그 화려함 아래에는 부드러운 음역도 흐른다. 잔잔한 현 위를 서두르지 않고 걷는 단 하나의 선율.
처음 갈 문은 다리를 막았던 그 야외의 광채,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이다. 서곡의 부점 리듬과 금관의 울림이 그가 무엇을 위한 작곡가인지 몇 분 안에 말해준다. 다음은 '사제 사독', 5분이면 충분하다. 아끼고 쏟아붓는 그 서명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1727년 이래 영국의 모든 대관식이 같은 자리에서 되풀이해온 그 차오름으로 만난다. 그리고 '메시아'에 자리를 잡되 '할렐루야'만 기다리지는 말 것. 목가풍의 '피파'와 '그가 양 떼를 먹이시리라'에서 그 부드러운 음역이 열린다. 즉효의 구경거리에 먼저 붙잡히고, 그 원리를 축소판으로 확인한 뒤, 마지막에 전곡 전체로 걸어 들어가는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