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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베르디에게 불협화음은 규칙의 위반이 아니라 신호다. 한 사람이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알리는 신호. 그의 음악을 처음 들을 때 귀가 붙드는 것은 화음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이 잠시 어긋나는 순간이다. 준비도 예고도 없이 목소리 하나가 화음 위로 삐끗 올라서고, 그 삐끗함이 슬픔이나 분노의 정확한 크기가 된다. 여러 성부가 대등하게 짜이던 폴리포니가 물러나고, 말하는 한 사람의 내면이 소리의 중심으로 걸어 나온다. 그가 남긴 것은 새로운 화성법이 아니라, 음악이 감정을 '묘사'하는 대신 감정 그 자체가 되는 방식이었다.
그는 오래도록 만토바 궁정의 고용인이었다. 악보를 대령하고 축제 일정에 맞춰 곡을 바치는 자리. 1607년, 아내 클라우디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몇 달 만에 공작은 왕가의 혼례를 위한 오페라 「아리안나」를 명령했다. 애도할 겨를도 없이, 그는 버림받은 여인이 떠나간 연인을 향해 죽음을 부르짖는 장면을 써야 했다. 오페라 전체는 사라지고 그 탄식 하나만 살아남았는데, 당대 청중이 눈물 없이는 듣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이 「아리안나의 탄식」이야말로 그가 자기 상실을 무대 위 인물의 목소리로 옮겨 놓은 자리다. 훗날 베네치아 산마르코의 악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그는 궁정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이 전환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한 이론가가 그의 마드리갈을 두고 규칙을 어긴 조악한 음악이라 공격하자, 몬테베르디는 물러서는 대신 자신이 하는 일에 '제2작법'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화성이 가사의 주인이던 옛 방식과 달리, 이제 말이 화성의 주인이 된다는 선언이었다. 원리는 단순하다. 선율의 규칙이 감정과 충돌하면 감정을 택한다. 그래서 매끄러운 협화음으로 이어져야 할 자리에 준비 없는 불협화음이 놓이고, 대등하던 성부들 대신 밑을 받치는 저음과 그 위를 말하듯 노래하는 한 목소리가 남는다. 분노와 전쟁을 그릴 때는 같은 음을 잘게 쪼개 떨리게 하는 격정 양식(stile concitato)을 새로 고안했다. 감정마다 거기에 맞는 소리의 문법을 하나씩 발명한 셈이다.
처음 들을 곡은 「아리안나의 탄식」이다. 반주 위에 목소리 하나뿐인 이 짧은 곡에서 그의 혁명 전부가 축소판으로 들린다. 화음이 말의 굴곡을 따라 휘어지는 그 순간이. 이어 「오르페오」로 가면, 죽음의 강을 건너려 뱃사공을 설득하는 '전능한 영이여(Possente spirto)'에서 노래의 장식이 그대로 간청의 무기가 되는 것을 듣게 된다. 마지막은 그의 대미인 「포페아의 대관」, 권력을 거머쥔 연인들이 부르는 종결 이중창 '그대를 바라보네(Pur ti miro)'다. 옳고 그름을 넘어 욕망이 그저 아름답게 승리하는 이 장면은 오페라가 얼마나 인간을 닮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녹음은 탄식과 마드리갈을 알레산드리니의 콘체르토 이탈리아노로, 두 오페라는 가디너나 르네 야콥스, 라 베네치아나의 손을 빌리면 그가 발명한 목소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