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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레즈의 악보에서는 어떤 음도 우연히 그 자리에 놓이지 않는다. 높이도, 길이도, 세기도, 음색도 미리 계산된 질서 안에 있다. 그런데 이 극단의 통제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뜻밖에도 메마르지 않다. 콘트랄토의 목소리가 플루트와 비올라, 기타, 비브라폰과 타악기 사이를 지날 때, 음악은 도표가 아니라 유리와 금속을 두드릴 때 번지는 빛처럼 반짝인다. 규율이 그대로 관능이 되는 이 역설이 그의 소리가 지닌 정체성이다.
스물일곱의 그는 스승 세대를 향해 「쇤베르크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12음 기법을 발명하고도 리듬과 형식을 낡은 세계에 남겨 둔 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거와의 단절은 신념이자 몸짓이었고, 한 인터뷰에서는 오페라 극장을 폭파해 버리라고 내뱉을 만큼 격렬했다. 균열은 그다음에 온다. 극장을 불태우자던 사람이 훗날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의 「반지」 4부작을 지휘했고, 뉴욕과 런던의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으며, 이르캄이라는 음향 연구소를 국가의 지원으로 세웠다. 방화범이 소방서장이 된 셈이지만, 그에게 지휘대와 연구소는 파괴가 아니라 자기 음악을 끝까지 밀고 가는 다른 이름이었다.
초기의 문법은 음을 하나하나 점처럼 놓아 모든 매개변수를 수열로 다스리는 것이었지만, 「르 마르토」에 이르면 격자는 느슨해지고 음색과 울림이 앞으로 나선다. 선율을 뒤쫓지 말고, 하나의 짧은 몸짓이 어떻게 번식하듯 자라나 다른 악기로 옮겨 붙는지, 뜯고 두드린 소리가 어떻게 잔향으로 스러지는지를 들으면 된다. 화성의 긴장이 아니라 색과 감쇠, 메아리와 응답이 이 음악의 논리다. 무조라는 같은 출발점에서 많은 이가 건조함으로 갔다면, 그는 정반대로 감각의 밀도를 택했다.
처음에는 「르 마르토 상 메트르」로 들어가는 편이 좋다. 르네 샤르의 초현실주의 시가 낯선 악기들의 광채 속을 떠도는, 이 소리 세계가 태어난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쉬르 앵시즈」다. 세 대의 피아노와 세 대의 하프, 세 조의 타악기가 쏟아내는 잔향만으로 지어진, 그 엄격함이 결국 눈부신 관능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곡이다. 여력이 있다면 「레퐁」으로 나아가자. 악기가 제 전자적 분신과 소리를 주고받으며 울림이 공간을 도는, 그가 왜 지휘와 연구소로 향했는지를 한 번에 들려주는 작품이다. 세 곡 모두 그가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과 직접 남긴 도이체 그라모폰 녹음이 가장 믿을 만한 길잡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