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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4중주 한 곡의 마지막 악장, 흥겨운 폴카가 한창 돌아가던 자리에서 문득 제1바이올린이 높은 한 음을 찢어질 듯 길게 붙든다. 아래에서 세 악기가 떨리는 동안 그 음만 홀로 공중에 걸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스메타나는 이 소리를 악보에 일부러 적어 넣으며 자신에게 그런 작은 장난을 허락한다고 썼다. 그에게는 그토록 참혹했던 소리였기 때문이다. 청력이 무너지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귓속에서 밤낮으로 울리며 결코 멎지 않던 이명, 바로 그 휘파람이었다. 그의 음악을 처음 들을 때 붙잡아야 할 것이 여기에 다 들어 있다. 이 사람은 제 삶을 풍경으로 옮겨 적었고, 사적인 일기와 조국의 초상이 같은 목소리에서 흘러나온다.
태어나 집에서 쓰던 말은 독일어였고 이름도 프리드리히였다. 합스부르크 치하의 보헤미아에서 독일어는 출세의 언어였고 체코어는 뒷전이었다. 서른을 훌쩍 넘겨서야 그는 모국어를 처음부터 다시 익히기 시작했다. 1848년 프라하 봉기 때 카를교의 바리케이드에 섰고, 뒤이은 탄압의 세월이 그를 체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언어도, 이름도, 음악도 함께 바꾸면서. 두 번째 균열은 훨씬 잔혹했다. 1874년 여름 한쪽 귀가 멀더니 그해가 가기 전 양쪽 모두 침묵에 잠겼다. 눈앞에 오케스트라를 두고도 단 한 음절 듣지 못하는 자리에서, 그의 가장 큰 작업이 시작된다.
스메타나를 스메타나이게 하는 것은 흐름이다. 그의 선율은 추상적으로 전개되기보다 어떤 장소를 통과하며 여행한다. 블타바의 주제는 산속 두 개의 샘에서 물방울처럼 배어 나와 물길이 되고 강이 되어, 마을 결혼식의 폴카를 지나고 달빛 아래 물의 요정들을 지나 급류에 부딪힌다. 민요를 직접 인용하지 않으면서 폴카와 푸리안트 같은 보헤미아 춤의 박자로 제 손으로 민속을 지어낸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화성을 뜯어보기 전에 먼저 한 편의 지리가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정작 이 풍경들을 소리로 확인할 길이 그에게는 없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듣는 이의 등을 서늘하게 만든다. 한 세대 뒤 드보르자크가 걸어 들어간 문을, 그가 먼저 밀어 열었다.
처음 열 문은 〈블타바〉(몰다우)가 좋다. 강 하나가 태어나 흘러가는 십여 분, 완전히 귀를 잃은 뒤 채 삼 주가 못 되는 시간에 써 내려간 물소리이자, 정작 그 자신은 상상 속에서만 들었을 소리다. 다음엔 이 곡이 속한 여섯 편의 연작 《나의 조국》 전곡으로 가 보라. 비셰흐라트 성을 여는 하프의 첫 화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귀가 멀어 가던 손으로 나라 하나를 통째로 소리로 세운 자취를 통과하는 일이다. 끝으로 현악 4중주 제1번 《나의 생애로부터》, 첫 문단의 그 높은 음이 기다리는 곳으로. 조국을 그리던 손이 이번엔 자기 자신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이며, 여기까지 오면 그의 공적인 강과 사적인 이명이 실은 한 사람의 같은 노래였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