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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불이 꺼지고 첫 소절이 흐르는 순간, 왜 우리는 처음 듣는 멜로디를 이미 오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낄까? 앨런 멘켄의 음악은 늘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의 선율은 화면 뒤에 깔리는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대신 발음해 주는 대사다. 인어가, 야수가, 저잣거리의 도둑이 입을 열기도 전에 관객은 노래 한 줄로 그들이 무엇에 목말라 있는지 알아 버린다. 애니메이션의 옷을 입었을 뿐, 그가 쓴 것은 언제나 무대 위에서 사람이 부르도록 설계된 노래였다.
이 감각은 작사가 하워드 애슈먼과의 짧은 동행에서 벼려졌다. 뉴욕의 클럽에서 광고 징글을 쓰던 그를 무대로 끌어낸 사람이 애슈먼이었고, 1982년 오프브로드웨이 <흡혈 식물 대소동>으로 두 사람은 함께 이름을 얻었다. 애슈먼은 아이들을 위해 쓰되 아이들을 얕잡아 쓰지 말라고 가르쳤고, 주인공이 자신의 갈망을 처음 토해 내는 '나는 원한다'의 노래를 이야기의 심장에 놓는 법을 일러 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알라딘>을 만들던 중 애슈먼은 에이즈로 눈을 감았다. 1991년, 마흔의 나이였다. <미녀와 야수> 엔딩에는 '인어에게 목소리를, 야수에게 영혼을 준 벗 하워드에게'라는 헌사가 남았다. 이후 그는 팀 라이스, 스티븐 슈워츠 같은 이들과 계속 썼지만, 그 첫 목소리의 빈자리는 이력 내내 옅은 그림자로 남는다.
멘켄의 문법은 흉내의 기술 위에 서 있다. <흡혈 식물 대소동>에서는 1960년대 두왑과 모타운을, '언더 더 씨'에서는 카리브의 칼립소를, <미녀와 야수> 주제가에서는 프랑스풍 왈츠를 능청스럽게 빌려 온다. 하지만 빌려 온 양식은 늘 인물의 감정이 부풀어 오르는 정확한 박자에 맞춰 선율을 밀어 올리기 위한 도구다. 대사 밑에 분위기를 칠하는 여느 영화음악과 달리, 그의 노래는 그 자체로 줄거리를 떠밀고 나아간다. 누구나 한 번에 따라 부를 만큼 단순한 음을 쓰면서도, 화성으로는 아직 닿지 못한 것을 향한 그리움을 밑에 깔아 둔다. 쉬운 멜로디와 채워지지 않은 갈망, 그 둘의 공존이 그의 서명이다.
처음이라면 <인어공주>의 '파트 오브 유어 월드'부터 권한다. 주인공이 원하는 것을 노래로 선언하는 '나는 원한다'의 교과서 같은 곡이라, 그의 극작법이 한 곡에 응축돼 있다. 다음은 <미녀와 야수> 주제가로, 애슈먼의 노랫말이 느린 왈츠 위에서 두려움이 사랑으로 바뀌는 짧은 순간을 붙든다. 마지막은 애슈먼 이후 팀 라이스와 쓴 '어 홀 뉴 월드', 두 목소리가 하나의 선율을 주고받으며 솟아오르는 방식이 그가 이별 뒤에도 어떻게 계속 날아올랐는지를 들려준다. 이 곡들은 국내에서도 해마다 열리는 '디즈니 인 콘서트' 무대에 오르니,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로 직접 만날 기회를 노려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