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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곡가가 술 취한 독일 용병의 엉터리 이탈리아어 세레나데와, 화음이 발밑에서 무너져 내리는 참회의 노래를 같은 손으로 썼다면, 그 손의 정체는 무엇일까. 라소를 들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이 폭이다. 그의 음악에는 고정된 표정이 없다. 웃기려 들면 천박할 만큼 웃기고, 슬퍼지면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슬퍼진다. 하나의 통일된 양식을 밀고 나가는 대신, 그는 가사의 단어 하나하나마다 소리의 온도를 바꾼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그를 국경 밖으로 실어 날랐고—소년 시절 목소리가 하도 고와 세 번이나 납치를 당했다고 전해진다—몽스에서 이탈리아를 거쳐 뮌헨의 궁정에 닿는 동안, 그는 유럽 각 지역의 어법을 몸에 삼켜버렸다.
뮌헨 궁정에서 삼십 년 가까이 예배당 음악을 이끄는 동안 그의 이름은 인쇄술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16세기 후반 유럽에서 찍힌 악보의 상당 부분이 그의 것이었을 만큼, 살아서 이미 어디에나 있는 소리였다. 그러나 말년의 그는 의사의 기록에 '우울증'으로 남은 병에 오래 시달렸고, 자기 죽음에 붙들린 채 지냈다. 마지막 대작을 교황에게 헌정한 것이 세상을 뜨기 삼 주 전, 그리고 그가 눈감던 날 궁정은 재정을 이유로 그를 해임하기로 정했다고 한다. 평생 감정의 전 음역을 자유자재로 그리던 사람이, 끝에 가서는 가장 어두운 한 음역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라소의 문법은 결국 수사학이다. 같은 시기 로마에서 팔레스트리나가 어떤 가사 앞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매끄러운 균형을 이상으로 삼았다면, 라소는 정반대 편에서 움직였다. 그에게 음표는 늘 음절의 시중을 든다. 단어가 '어둠'이라 말하면 화성이 어두워지고, '떨림'이라 말하면 선율이 실제로 떨린다. 「시빌라의 예언」 서두에서 그는 네 마디 만에 다장조에서 올림다단조까지 화음을 미끄러뜨려, 조성이 채 확립되기도 전에 조성을 뒤흔든다—반세기 뒤 제수알도의 대담한 반음계를 앞질러 예고하는 소리다. 이 극단은 장식이 아니라 문법이다. 그는 아름다움보다 말의 진실을 먼저 들리게 하려 했다.
처음 문을 여는 곡으로는 「마토나 미아 카라」가 좋다. 이탈리아 여인에게 서툰 이탈리아어로 수작을 거는 독일 병사의 익살로, 삼십 초면 이 사람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된다. 그다음 「시빌라의 예언」의 서곡 '카르미나 크로마티코'로 넘어가면, 같은 손이 화음을 어떻게 허공에 띄우는지 들린다—데 라비린토나 브라반트 앙상블(Hyperion)의 녹음이 이 낯섦을 또렷이 살린다. 마지막은 「성 베드로의 눈물」이다. 그리스도를 부인한 베드로의 뉘우침을 일곱 성부로 스무 곡에 걸쳐 풀어낸, 숨을 거두기 직전 완성한 유언 같은 연작으로, 앞의 익살과 낯섦이 여기서 하나의 깊은 슬픔으로 가라앉는다. 갈리칸투스(Signum)나 헤레베헤가 이끄는 녹음으로 들어서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