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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지은 텅 빈 공간에 목소리 서너 겹이 쌓여 오르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뒤파이의 소리는 벽을 때리고 부서지는 대신, 공중에서 서로를 받쳐 들며 둥글게 부푼다. 그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이 먼저 놀라는 건 그 매끄러움이다. 귀에 걸리는 모서리가 거의 없다. 3도와 6도로 채워진 화음이 층층이 겹치면서, 소리가 평면이 아니라 부피를 가진 무엇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 귀에 이 소리가 '달게' 들렸으리라는 짐작은 무리가 아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자신이 쓴 성모 안티폰 「아베 레지나 첼로룸」을 대성당에서 가장 뛰어난 가수들을 불러 병상에서 들려 달라 청했다 전해진다. 그 곡의 성스러운 라틴어 문장 사이에는 '죽어 가는 뒤파이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자기 이름을 박아 넣은 기도가 끼어 있었다. 정작 노래할 사람들을 제때 모으지 못해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사제의 사생아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큰 사람이, 유언장과 적잖은 재산을 남길 만큼 올라선 생의 끝에서 고른 마지막 문장이 자기 이름을 적어 넣은 자비의 청이었다는 사실은 오래 남는다.
그의 문법은 옛 골조와 새 살을 한 몸에 붙인 데 있다. 한쪽에는 아주 느리게 늘어진 옛 성가 가락이 놓인다. 이 가락을 기둥 삼아 같은 리듬 꼴을 비율만 바꿔 가며 되풀이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골조가 곡 전체를 떠받친다. 다른 한쪽에는 그 골조 위로 흐르는 매끄러운 화음이 있다. 성가 선율에 두 성부가 나란히 붙어 3도와 6도로만 미끄러지는 방식, 뒷날 포부르동이라 불린 이 흐름은 텅 빈 5도의 울림 대신 꽉 찬 삼화음의 감촉을 여러 성부의 음악에 들여왔다. 수학으로 짠 골조와 감각으로 만진 표면이 한 곡 안에서 어긋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소리의 중심이다.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듣는 편이 좋다. 샹송 「스 라 파스 아이 팔」은 흥얼거릴 수 있는 한 가닥 선율이다. 이 짧은 노래가 훗날 그의 미사곡에서 성당의 골조로 자라난다는 것을 알고 들으면, 같은 가락이 규모를 바꾸는 광경이 손에 잡힌다. 다음은 1436년 피렌체 대성당 봉헌을 위해 쓴 「눈퍼 로자룸 플로레스」다. 두 테너가 5도 간격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그 비율이 브루넬레스키의 돔을 본떴다고도 솔로몬 성전의 치수를 옮겼다고도 전해지지만, 어느 쪽이든 귀가 듣는 것은 비례가 소리로 바뀌는 순간이다. 마지막은 「아베 레지나 첼로룸」, 그의 이름이 기도문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곡이다. 녹음은 칸티카 심포니아(주세페 말레토)의 글로사 음반이 균형이 좋고, 앤드루 커크먼이 이끄는 빈쇼이스 콘소트의 또렷한 합창도 좋은 입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