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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츠의 음악은 독일어가 어떻게 소리가 되는지를 듣는 일이다. 그의 성부는 선율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문장을 위해 존재한다. 한 단어의 강세, 한 구절의 무게, 한 물음의 억양이 먼저 있고 음정과 리듬은 그 뒤를 따라온다. 그래서 그의 합창을 들으면 노래보다 말이 먼저 도착한다 — 위로하는 말, 부르는 말, 애원하는 말이. 이탈리아에서 배운 화려한 장치를 그는 독일어 성경 문장을 또렷하게 만드는 도구로 되돌려 놓았고,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소리는 동시대 누구와도 갈라선다.
스물넷 무렵 베네치아로 건너가 조반니 가브리엘리 곁에서 몇 해를 보냈고, 스승이 세상을 뜨며 반지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드레스덴 궁정악장이 된 뒤 그를 결정지은 것은 30년전쟁이었다. 작센이 전화(戰火)에 휩쓸리면서 궁정 예배당의 성악가와 급료가 함께 말라붙었고, 한때 두 개 세 개의 합창단을 마주 세우던 사람이 목소리 둘과 오르간 하나로 같은 신앙을 말해야 했다. 그 사이 1625년에는 아내 막달레나를 잃고 다시 혼인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에 감도는 헐벗음은 미학이기 전에 형편이었다.
그의 문법은 세 겹이다. 먼저 공간 — 가브리엘리에게서 가져온 방식대로 그는 합창단을 마주 세워, 한 무리가 부르면 다른 무리가 응답하게 했다. 소리가 건축처럼 좌우로 오간다. 다음은 극(劇) —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몬테베르디의 새 어법을 들은 뒤로 그는 독창과 통주저음만으로 인물을 세우고 대화를 만들었다. '사울, 사울'을 부르는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번지며 회심의 충격을 소리로 재현한다. 마지막은 절제 — 나이가 들수록 그는 장식을 덜어냈고, 만년의 수난곡에 이르면 반주 없는 낭송만 남는다. 아픈 단어에는 불협화음을, 위로에는 순한 화음을 얹는 이 셈법이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에 복무한다.
처음 들을 곡은 '음악적 장례식'(Musikalische Exequien, 1636)이다. 독일어로 쓴 첫 진혼 음악으로, '복 있도다, 죽은 자들은'의 위안이 그가 말과 목소리로 무엇을 하려 했는지 가장 곧게 보여준다. 복스 루미니스(리오넬 뫼니에)의 녹음이 이 곡의 결을 가장 투명하게 전한다. 다음은 '심포니에 사크레' 제3권의 '사울, 사울,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SWV 415), 이탈리아식 극적 장치를 끝까지 펼친 정점이다. 마지막으로 '마태 수난곡'(SWV 479)을 들으면 전쟁이 남긴 것과 그가 도달한 곳이 한자리에 놓인다. 전곡을 훑고 싶다면 라데만이 이끈 드레스덴 실내합창단의 카루스 완간이 가장 믿을 만한 길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