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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무렵의 어느 날, 그는 루카에서 피사까지 먼 길을 걸어 베르디의 <아이다>를 보러 갔다. 극장을 나서던 그 밤을 두고 그는 훗날 음악의 창 하나가 자기 앞에 열렸다고 회고했다. 그날 이후 그의 무대에서 큰 사건은 언제나 아주 작은 데서 시작된다. 꺼진 촛불 하나, 얼어붙은 손, 끝내 돌아오지 않는 배 한 척. 그리고 그 사소한 순간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서히 부풀어 올라 마침내 객석을 적신다. 노래하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어떻게 실제보다 더 크고 더 뜨겁게 울릴 것인가 — 그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한 가지에 매달린다.
그는 원래 극장이 아니라 성가대석으로 갈 사람이었다. 그의 집안은 루카 대성당의 악장 자리를 네 대에 걸쳐 대물림해 왔고, 아버지가 그의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어린 그가 언젠가 그 자리를 이으리라 여겼다. 피사의 그 밤이 방향을 틀어 놓았다. 성당의 오르간 대신 무대를 택한 순간부터, 그가 평생 그린 것은 신을 향한 노래가 아니라 가난한 셋방과 버림받은 여자의 노래였다. 훗날 그의 집에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늘도 드리웠다. 1909년, 집안일을 돕던 어린 하녀 도리아 만프레디가 아내의 근거 없는 의심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다.
그의 선율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노래하는 성부를 오케스트라가 같은 음으로 나란히 겹쳐 따라가며 목소리를 밑에서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 그는 듣기 좋은 아리아를 하나씩 떼어 세우는 대신 대화와 장면 전체를 끊기지 않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 붙였고, 한 번 지나간 선율을 인물이 무너지는 바로 그 순간에 형태를 바꿔 되돌려 놓았다. 그 무렵 유럽의 여러 작곡가가 조성을 허물며 실험으로 나아갈 때, 그는 드뷔시에게서 얻은 낯선 화성의 색채마저 오직 한 사람을 울리기 위한 재료로만 썼다. 눈에 띄는 장치는 없다. 모든 것이 목소리와 눈물 쪽으로 기운다.
처음 듣는다면 <라 보엠>부터. 1막에서 꺼진 촛불을 핑계로 두 사람이 어둠 속에 손을 맞잡는 장면, 로돌포가 미미의 차가운 손을 감싸 쥐며 부르는 노래 안에 이미 그의 전부가 들어 있다. 다음은 <나비부인>. '어떤 개인 날', 오지 않을 배를 홀로 기다리며 한 여자가 그날의 풍경을 미리 그려 보는 이 노래는 그가 연약한 사람을 어디까지 밀어붙이는지를 보여 준다. 마지막은 <투란도트>. '아무도 잠들지 말라'의 화려함 뒤에 정작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은 하녀 리우가 스스로 숨을 놓는 장면이다. 그 음악이 그가 쓴 마지막 음표였고, 1926년 초연에서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바로 그 대목에 이르러 지휘봉을 내려놓고 객석을 향해 여기서 오페라는 끝난다고, 이 자리에서 작곡가가 세상을 떠났다고 말한 뒤 무대를 멈췄다. 스무 해 전 집에서 죽어 간 그 소녀의 그림자를 리우에게 겹쳐 읽는 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