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 COMPOSER
Philippe de Vitry
프랑스 파리 · 1291–1361 · 예정 공연 0개
팔로우하면 필리프 드 비트리의 공연이 캘린더에 모이고, 새 일정이 등록되면 알려드립니다.
한 곡 안에서 서로 다른 라틴어 가사 두세 편이 동시에 울린다면, 우리는 그 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할까? 비트리의 모테트 앞에서 처음 드는 당혹감이 거기서 온다. 가장 낮은 성부는 성가에서 떼어 온 짤막한 선율을 느리게 되풀이하며 바닥을 다지고, 그 위에서 두 성부가 각자 다른 이야기를 빠르게 읊는다. 가사는 겹쳐 알아들을 수 없고, 알아듣는 것이 애초에 목표가 아니다. 귀에 남는 것은 노래라기보다 되돌아오는 구조다. 부드럽게 흘러가는 대신 각을 세워 조립한 소리, 감정을 토해내기보다 치밀하게 계산한 소리다.
그는 음악을 생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었다. 왕실 행정과 외교의 한복판에서 문서를 다루고 협상에 나섰으며, 말년에는 주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음악은 그 삶의 부산물이자 무기였다 — 뒤에 이야기할 풍자시집에 끼워 넣은 모테트들은 실제 권신을 겨눈 암호로 읽힌다. 균열은 정작 그의 이름 자체에 있다. 한 시대에 이름을 준 이론서는 온전한 원본 없이 조각과 편집본으로만 남아, 어디까지가 그의 손인지 지금도 논쟁거리다. 확실히 그의 것이라 부를 모테트는 채 스무 곡이 못 되고, 시인 페트라르카가 그를 프랑스 제일의 시인이라 불렀다고 전하지만 정작 그 시는 거의 사라졌다. 말을 칭송받은 사람이 숫자로 살아남은 셈이다.
그 숫자가 그의 문법이다. 낮은 성부에는 두 겹의 되풀이가 걸린다. 음높이의 배열이 한 바퀴 도는 주기와 리듬의 패턴이 한 바퀴 도는 주기가 길이를 달리하며 어긋나게 겹치는데, 후대에 아이소리듬이라 불리는 짜임이다. 그래서 같은 리듬이 매번 다른 음을 입고 돌아오고, 이음매는 좀처럼 귀에 잡히지 않는다. 여기에 더 잘게 쪼갠 새 음가와 붉은 잉크로 표시하는 변형이 더해지면서, 셋으로만 나뉘어 '완전'하다던 옛 박자에 둘로 나누는 길이 열렸다. 낮은 성부는 노래하는 베이스가 아니라 곡 전체를 돌리는 태엽이 된다. 이 되풀이는 멜로디의 감흥이 아니라 필연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 처음엔 메마르지만, 구조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을 감지하기 시작하면 음악이 갑자기 입체로 선다.
입구로는 「가리트 갈루스 / 인 노바 페르트」가 좋다. 풍자시집에 실린 이 곡에서 수탉과 여우와 눈먼 사자의 우화는 무너진 권신을 겨눈 정치 만평으로 읽히고, 윗성부는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의 첫 행을 끌어온다 — 말장난 같은 알레고리가 어떻게 리듬의 건축으로 굳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다음은 「쿰 스타투아 / 후고 / 마기스테르 인비디에」로 넘어가자. 질투를 겨눈 이 성숙기의 세 성부 곡에서는 우화의 온기가 걷히고 되풀이의 구조가 더 넓고 차갑게 펼쳐진다. 두 곡을 오가면 그의 손이 어디로 향했는지 보인다. 녹음은 올랜도 컨소트의 『Philippe de Vitry and the Ars Nova』가 명료하고, 세쿠엔치아의 모테트·샹송 모음이 더 거친 질감을 준다. 풍자시집 전체의 맥락이 궁금하면 보스턴 카메라타의 『로만 드 포벨』이 곡을 원래 자리에 되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