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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한 남자가 긴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며 백 명 남짓한 연주자에게 박자를 새기고 있었다. 루이 14세의 쾌유를 감사하는 테 데움을 이끌던 참이었다. 지팡이가 빗나가 제 발끝을 찍었고, 상처는 괴저로 번졌으며, 다리를 자르면 춤을 출 수 없다며 절단을 마다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는 얼마 뒤 숨을 거두었다. 이 최후는 그의 음악을 그대로 압축한다. 바닥을 때리는 완강한 박, 한 치의 어긋남도 허락하지 않는 규율. 그의 소리에서 먼저 들리는 것은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라, 흩어진 무리를 한 몸으로 묶어 세우는 명령의 리듬이다.
피렌체에서 건너온 소년이 어떻게 '프랑스적인 것'의 기준 자체가 되었는가. 그의 삶에서 가장 깊은 균열은 여기에 있다. 밤을 소재로 한 궁정 발레의 새벽 장면에서 어린 소년 왕이 떠오르는 태양으로 등장할 때, 그는 그 곁에서 함께 춤을 췄다. 그날 이후 왕의 총애는 곧 권력이 되었다. 궁정 음악의 총감독에 오른 그는 마침내 프랑스 땅에서 노래 딸린 무대를 올릴 권리를 독점했고, 그의 서면 허가 없이는 누구도 두 곡의 아리아와 두 대의 악기를 넘겨 무대에 세울 수 없었다. 몰리에르와 웃음을 짓던 코메디 발레를 뒤로하고, 그는 키노와 손잡아 프랑스 비극을 통째로 노래로 옮기는 새 장르를 세웠다.
그의 어법은 서곡에서 문을 연다. 점을 찍은 리듬으로 위엄 있게 걷다가 돌연 빠른 푸가로 흩어지는 두 부분 형식 — 그가 세운 이 프랑스식 서곡을 훗날 바흐와 헨델까지 하나의 표준으로 물려받았다. 위엄 아래에는 언제나 춤이 흐른다. 같은 저음이 고집스레 되풀이되는 샤콘과 파사카유에서, 그는 반복을 지루함이 아니라 서서히 차오르는 상승으로 바꾼다. 그리고 노래가 있다. 그는 당대 비극 배우들의 낭송을 파고들어, 프랑스어가 입에서 말해질 때의 억양과 숨을 그대로 선율의 굴곡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의 레치타티보는 노래이면서 동시에 또렷하게 발음되는 대사다.
처음 여는 문으로는 《부르주아 귀족》 모음곡이 좋다. 몰리에르 희극에 붙인 춤 음악이어서, 무거운 장치 없이도 그의 리듬 감각과 궁정의 화사함을 곧장 만질 수 있다. 다음은 《아티스》다. 루이 14세가 가장 아꼈다는 이 비극에서 신들이 잠을 불러오는 '잠의 장면(Sommeil)'은 프랑스 바로크가 빚어낸 가장 나른한 마법이다. 1987년 윌리엄 크리스티와 레자르 플로리상의 연주가 잊혔던 이 세계를 통째로 되살려냈으니, 그 녹음을 길잡이로 삼으면 된다. 마지막은 정점인 《아르미드》. 잠든 원수 위로 단검을 치켜든 마녀가 끝내 찌르지 못하는 2막의 독백 '마침내 그가 내 손안에 있다'는, 증오가 사랑 앞에서 허물어지는 순간을 말과 노래의 경계에서 그려낸다. 크리스토프 루세나 크리스티의 손을 잡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