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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은 화음으로 쌓이지 않고 선으로 겹쳐진다. 서너 개의 목소리가 저마다 다른 궤도를 달리다가 마디의 끝에서만 텅 빈 5도와 8도의 기둥으로 맞물리는데, 그 순간의 울림은 훗날 3도가 채워 넣을 따뜻함이 아니라 종처럼 서늘하게 비어 있다. 선들은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각자 살아 움직이고, 때로 하나의 선율을 두 목소리가 토막 내어 주고받으며 숨을 끊어 놓는다. 낯설고 금속성이며 투명한 이 소리가 그의 지문이다.
그는 여러 군주의 비서이자 성당의 참사원으로 살았지만, 정작 그를 남긴 것은 자기 이름에 대한 집요함이었다. 노래 대부분이 작가도 순서도 없이 흩어져 전해지던 시절에, 그는 자신의 시와 음악을 직접 편집해 정돈된 전집 필사본으로 묶게 했다. 익명을 거부한 이 손이 노년에는 스스로를 늙고 병들고 볼품없는 연인으로 그려 낸다. 예순을 넘긴 자신이 명성만 듣고 반한 젊은 여인과 주고받았다는 편지와 시를 엮은 『진실한 이야기』에서, 그는 궁정 연애의 관습을 자기 몸으로 조롱한다. 실화인지는 다투어지지만, 영원히 남으려는 의지와 스러지는 몸을 나란히 놓은 그 시선만은 분명하다.
그 정돈벽은 소리의 짜임에도 그대로 새겨져 있다. 그는 가장 낮은 성부에 하나의 리듬 꼴과 하나의 음높이 열을 서로 다른 주기로 겹쳐 돌렸다. 귀에 곧바로 들리지는 않는 이 격자가 곡 밑에서 수학처럼 돌아가며, 위층의 선율이 아무리 자유로워 보여도 결국 정해진 눈금 위에 얹히게 만든다. 여기에 선율을 잘게 끊어 두 목소리에 나눠 던지는 딸꾹질 같은 기법이 더해지고, 롱도와 발라드와 비를레라는 후렴 구조가 노래를 되풀이하는 틀로 감는다. 극단에서는 음악이 글자를 흉내 내어, 노래가 끝에 이르면 처음으로 거꾸로 되짚어 흐른다.
들어가는 길은 홑겹에서 시작하는 편이 좋다. 단선율 비를레 「두스 담 졸리」는 반주 없는 한 줄의 노래만으로 이 시대의 감각을 통째로 품고 있어,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다음으로 롱도 「나의 끝이 나의 시작」은 가사가 말하는 그대로 음악이 뒤로 돌아 나가는 장치를 귀로 따라가 보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은 「노트르담 미사」다. 자비송부터 마침 선포까지 미사 통상문 전체를 한 사람의 머리가 하나의 건축으로 세운 유례없는 시도이니, 토막이 아니라 통째로 들으며 그 규모를 실감할 일이다. 세속 노래는 올랜도 콘소트의 마쇼 전집 녹음이, 미사는 앙투안 게르베가 이끄는 디아볼루스 인 무지카가 성가를 함께 엮어 되살린 판이 미덥고, 「나의 끝이 나의 시작」 같은 곡은 힐리어드 앙상블의 녹음으로 그 짜임이 또렷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