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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화음은 다음 화음을 향해 저항 없이 끌려가고, 어떤 화음은 발밑이 꺼지는 듯한 불안을 남길까? 라모는 이 물음에 이론적 답을 내놓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답을 소리로 실연해 보인 사람이다. 그의 음악에서 귀가 먼저 붙잡는 것은 선율이 아니라 화성의 무게중심이다. 저음이 한 걸음 내디디면 위쪽의 모든 소리가 그 중력에 반응하고, 예고 없이 끼어든 불협화음 하나가 장면 전체의 공기를 바꿔 놓는다. 화음이 배경이 아니라 사건이 되는 음악, 이것이 그의 소리가 남긴 가장 또렷한 지문이다.
오랜 세월 그는 오르가니스트이자 화성 이론서의 저자로만 알려졌을 뿐, 무대와는 거리가 먼 이름이었다. 쉰을 목전에 두고 내놓은 첫 비극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가 오르자 파리 음악계는 둘로 쪼개졌다. 반세기 동안 규범으로 군림하던 륄리의 우아한 균형을 그가 과도한 화성과 불협화음으로 어지럽힌다는 비난이었다. 초연 무렵에는 세 운명의 여신이 부르는 트리오가, 성악가들이 음정을 못 잡아 무대에서 내려졌다고 전해진다. 반음계와 이명동음으로 공포를 빚으려던 대목이었다. 얄궂게도 스무 해 뒤 이탈리아 희가극을 둘러싼 다툼에서는, 한때 파괴자였던 그가 지켜야 할 옛 질서의 편에서 공격받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의 문법은 언제나 저음에서 위로 자라난다. 화성의 뿌리음이 진행의 논리를 정하고, 위 성부들은 그 논리를 따라 필연처럼 움직인다. 그래서 그의 진행은 자의적이지 않고 무언가에 이끌린 듯 들린다. 그러나 그는 그 필연을 스스로 흔드는 데서 쾌감을 찾았다. 준비 없이 떨어지는 불협화음, 조성의 바닥을 빼버리는 이명동음의 전환, 예상 밖으로 꺾이는 반음계. 이론가로서 그가 이름 붙인 장치들이, 작곡가의 손에서는 인물의 두려움과 분노를 그리는 붓이 되었다. 관현악도 반주가 아니라 묘사다. 폭풍이 몰아치고 새가 지저귀고 대지가 흔들리는 장면을 그는 목관과 현의 색으로 직접 그렸고, 궁정 춤곡의 또렷한 박절이 그 색채에 뼈대를 세웠다.
들머리는 건반이 좋다. <새들의 부름>이나 가보트와 그 변주를 크리스토프 루세의 연주로 들으면, 한 대의 하프시코드 안에서 화성이 어떻게 스스로 사건을 만드는지 좁은 렌즈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오페라-발레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이다. 긴 비극의 무게 없이 춤과 관현악의 색채가 이어져, 그의 감각적인 표면을 편하게 즐기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첫 비극 <이폴리트와 아리시>로 들어가면, 앞의 두 입구에서 만난 화성의 인력과 색채가 한 인물의 운명을 밀고 가는 힘으로 바뀌는 순간과 마주친다. 오페라 두 편은 윌리엄 크리스티와 레자르 플로리상의 녹음이 길잡이로 삼기에 미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