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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새해 첫날, 아테네의 무너져 가던 건물 안에서 스물두 살의 공학도가 탱크가 쏜 포탄 파편에 얼굴 왼쪽을 잃었다. 왼눈과 볼을 앗아간 그 상처는 평생 얼굴에 남았다. 훗날 그는 시위 군중의 소리를 이렇게 옮겨 적었다. 수십만 명이 한 구호를 외치다가, 새 구호가 대열 앞머리에서 솟아 꼬리 쪽으로 물결처럼 번지고, 적과 부딪치는 순간 그 완벽한 리듬이 수천 개의 아우성으로 부서진다고. 거기에 기관총 소리와 총알의 휘파람이 구두점을 찍는다고.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정확히 그 소리를 닮았다. 선율이 아니라 덩어리이고, 낱낱의 음이 아니라 수천 개의 사건이 한꺼번에 미끄러지는 소리다.
상처가 아물고 얼마 뒤 그는 조국을 등졌고, 궐석 재판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파리에 정치 난민으로 흘러든 그는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 사무소에서 십여 년을 엔지니어로 일하며, 브뤼셀 만국박람회의 필립스관을 아홉 개의 쌍곡포물면 껍질로 세웠다. 그 벽의 곡선은 자신이 총보에 그려 둔 현악 글리산도의 궤적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작곡을 정식으로 배우려 메시앙을 찾아갔을 때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화성학을 처음부터 다시 익히지 말라는 것, 수학과 건축과 그리스라는 밑천을 오히려 음악에 쓰라는 것이었다. 그 한마디가 그를 화성 규칙 대신 확률과 도형 쪽으로 돌려세웠다.
그의 문법은 개별 음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같은 시기 유럽의 전위는 음 하나하나를 수열로 통제하려 했지만, 그는 완벽한 질서와 완벽한 무질서가 귀에는 똑같이 들린다는 역설을 붙들었다. 그래서 음표가 아니라 확률 분포를 썼다. 기체 분자 수억 개의 개별 운동은 예측할 수 없어도 전체의 온도와 압력은 법칙을 따르듯, 수십 대의 현이 제각기 다른 속도로 음을 미끄러뜨리면 낱낱의 선은 사라지고 밀도와 곡면만 남는다. 곧게 뻗은 글리산도가 무수히 겹쳐 귀에는 휘어진 표면으로 잡히는 것이다. 그에게 작곡은 음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소리 구름의 밀도와 그것이 변해 가는 속도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처음 들을 곡은 「메타스타시스」다. 예순한 명이 연주하는 이 곡에서 현들이 저마다 다른 음으로 갈라져 부채처럼 벌어졌다가 다시 한 점으로 모이는 7분 남짓 동안, 필립스관의 벽이 소리로 서는 순간을 그대로 듣게 된다. 이어 「피토프락타」로 넘어가면, 활 대신 손끝으로 튕기고 두드리는 낱음들이 기체 분자처럼 흩어지는 통계의 소리를 만난다. 앞 곡이 곡면이라면 이 곡은 알갱이다. 두 곡은 모리스 르 루가 지휘한 프랑스 국립 방송관현악단의 오래된 녹음이 여전히 기준점이다. 마지막으로 「뉘」를 권한다. 사라진 정치범들에게 바친 이 무반주 합창은 첫 문단의 그 군중을 사람의 목소리로 되돌려 놓는다. 현이 미끄러지던 자리를 열두 성부의 성대가 대신 미끄러진다. 제임스 우드가 이끄는 뉴 런던 체임버 콰이어의 녹음이 좋은 길잡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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