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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가 남긴 다장조 전주곡이 하나 있다. 아르페지오가 잔물결처럼 끝없이 오르내리기만 할 뿐, 선율이라 부를 것도 없는 화성의 습작이다. 구노는 그 물결 위에 한 줄의 노래를 얹었다. 원래 그 자리에 없던 목소리가 물 위로 떠오르듯 솟고, 한 세기를 사이에 둔 경건함과 관능이 한 소절 안에서 포개진다. 이것이 그가 남긴 소리의 정체다. 단단하고 금욕적인 구조 위에 부드럽고 달콤한 선율의 막을 드리우는 손. 그의 음악에서는 성당의 향냄새와 극장의 분내가 늘 같은 공기 속에 섞여 있어서, 지금 울리는 것이 기도인지 사랑의 고백인지 끝내 가려내기 어렵다.
이 가려내기 어려움은 그의 삶을 가르던 균열에서 왔다. 젊은 날 그는 사제가 되려 했다. 파리 생쉴피스 신학교에서 두 학기 동안 신학 강의를 들었고, 한동안 편지에 스스로를 '아베 구노'라 서명했다. 그러나 그를 세상에 데려다 놓은 것은 제단이 아니라 무대였다. 괴테를 읽고 이십 년에 걸쳐 매만진 오페라 <파우스트>가 그 무대다. 영혼을 파는 이야기를 각광 아래 올리면서도 그는 미사곡의 펜을 놓지 않았고, 제대 앞의 말과 무대 위의 말을 한 몸에 지녔다. 1870년 전쟁을 피해 건너간 런던에서 아마추어 가수 조지나 웰던의 집에 삼 년 가까이 붙들려 신경이 무너진 채 파리로 실려 오기까지, 그의 생애는 경건과 도취 사이를 오가는 진자였다.
그 진자의 두 끝이 실은 같은 문법으로 흔들린다는 데 그의 비밀이 있다. 구노는 무엇을 쓰든 노래할 한 줄의 선율을 먼저 세우고, 그 아래에 조용히 흔들리는 화음의 맥박을 깔았다. <아베 마리아>에서 바흐의 아르페지오가 하던 일을, 오페라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미사에서는 합창이 대신 맡는다. 그래서 그의 미사는 오페라처럼 노래하고, 그의 아리아는 성가처럼 숨을 쉰다. 화성은 자주 반음씩 기대며 한숨짓지만 끝내 협화음의 단맛으로 녹아들어 날카로워지는 법이 없다. 뒷세대의 라벨이 그를 두고 프랑스 가곡의 진짜 시작점이라 부른 것도 이 대목 때문이다. 큰 소리와 볼거리로 치닫던 당대의 무대 한복판에서, 그는 사람 하나 크기의 다정함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 듣는다면 <아베 마리아>부터 여는 편이 좋다. 그의 모든 음악이 한 방울로 응축된 곡이어서, 남의 구조 위에 자기 노래를 얹는 손이 여기서 가장 맑게 드러난다. 다음은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줄리엣의 왈츠 '나는 살고 싶어'다.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들뜸이 선율을 타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이 순간을, 국내 무대의 소프라노들이 왜 즐겨 부르는지 단번에 납득하게 된다. 그리고 여유가 되면 <파우스트> 전체로. 보석 앞에서 마르그리트가 부르는 노래와 병사들의 합창 사이에서, 경건과 관능이 한 무대에 나란히 놓이는 그 특유의 공기를 통째로 만나게 된다. 이 순서로 세 곡을 지나오면, 향냄새와 분내가 그의 음악에서 왜 끝내 갈라지지 않는지 몸으로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