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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음악은 재료가 가장 적을 때 가장 커진다. 교향곡 5번을 여는 것은 선율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네 개의 음이고, 그 파편이 삼십 분 남짓한 교향곡 전체를 지탱한다. 아름다운 주제를 늘어놓는 대신 보잘것없는 동기 하나를 붙잡고 두드리고 뒤집고 조여서, 어느 순간 듣는 사람 앞에 예상보다 훨씬 큰 구조물을 세워 놓는 방식. 하이든에게 물려받은 형식 안에서 음악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싸우게 만든 것, 그것이 이 소리의 정체성이다.
균열은 하나로 충분하다. 20대 후반부터 귀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1802년 요양차 머물던 빈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그는 두 동생 앞으로 유서를 썼다. 죽음을 생각했으나 내 안에 있다고 느끼는 것을 다 꺼내 놓기 전에는 세상을 떠날 수 없었다고 적은 이 편지는 끝내 부쳐지지 않았고, 사후에야 유품 속에서 발견됐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청력이 무너져 가던 바로 그 시기에 영웅 교향곡과 열정 소나타 같은, 이전보다 한층 크고 사나운 음악이 쏟아져 나왔다. 소리를 잃는 일이 그의 음악을 멈추기는커녕 더 극단으로 밀어붙인 셈이다.
연주회장에서 아, 베토벤이다 싶은 순간은 대개 셋 중 하나다. 엉뚱한 자리에서 얻어맞는 악센트, 즉 약박에 꽂히는 스포르찬도가 잘 가던 음악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순간. 한껏 부풀었다가 예고 없이 속삭임으로 떨어지는 급전, 커지는 것보다 갑자기 작아지는 쪽이 더 무섭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리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다. 다른 작곡가라면 마침표를 찍었을 자리에서 전개가 다시 시작되고 종결부가 하나의 악장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리듬에 대한 집착이 있다. 교향곡 7번 2악장에서는 길고-짧고-짧고-길고-긴 리듬형 하나가 악장 전체를 끌고 간다.
입구로는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이 좋다. 주먹으로 내리치는 1악장과 노래로 어루만지는 2악장의 낙차가 이 사람의 양면을 한 자리에서 보여준다. 다음은 교향곡 7번. 선율이 아니라 리듬 하나가 청중을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 몸으로 확인하게 된다. 마지막은 현악사중주 14번. 귀가 완전히 닫힌 뒤에 쓴, 일곱 악장을 쉼 없이 이어 연주하는 사십 분의 음악이다. 이 곡을 들은 슈베르트가 이 다음에 우리가 쓸 것이 무엇이 남았느냐고 말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