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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관객이 어떻게 처음 듣는 선율을 첫 소절부터 함께 흥얼거릴 수 있을까? 그의 음악에서는 이 일이 매번 일어난다. 피아노가 짧은 음형 하나를 잔잔히 되풀이하고, 그 위로 누구나 한 번 들으면 붙잡을 수 있는 선율이 천천히 떠오른다. 화려한 전개도, 느닷없는 반전도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도는 반복이 조금씩 두꺼워지며 어느새 가슴을 밀어 올린다. 스크린 없이 음악만 남아도 풍경이 보이는 이유다.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하던 시절 그를 사로잡은 것은 라이히와 글래스로 대표되는 미니멀리즘, 최소한의 음형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건조한 현대음악이었다. 정작 그의 이름부터가 흠모하던 미국 프로듀서 퀸시 존스에서 따온 것이었으니, 엄격한 반복과 대중적 선율 사이 어디쯤이 그의 자리였다. 균열은 1983년에 찾아왔다. 제작 중이던 한 애니메이션의 음반 작업을 맡으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만났고, 그 인연은 40년 넘게 이어지는 동행이 되었다. 스크린이라는 상대를 얻자 그의 미니멀리즘은 선율을 향해 몸을 열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그 선율을 다시 오케스트라만의 무대로 데려가, 영화 없이도 서는 콘서트 작곡가로 되돌아왔다.
'아, 이 사람이구나' 싶은 순간은 대개 왼손에서 온다. 피아노가 붙드는 짤막한 반복 음형, 흔들리지 않는 맥박이 곡 전체의 바닥을 깐다. 그 위에 얹히는 선율은 조를 어지럽게 옮겨 다니며 긴장을 쌓는 대신, 같은 자리를 맴돌다 악기를 한 겹씩 늘려가며 부풀어 오른다. 갈등과 해결이 아니라 축적으로 감정을 만든다. 여기에 드뷔시를 떠올리게 하는 투명한 피아노의 색채, 자꾸 3박자로 기우는 왈츠의 향수가 섞인다. 건조해야 할 미니멀리즘의 맥박을 데워 끝내 울게 만드는 것, 그 온도차가 그의 서명이다.
처음 여는 문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그 여름으로(One Summer's Day)'가 좋다. 피아노 한 대만으로 그의 손이 무엇을 하는지 가장 맑게 들리는 곡이다. 다음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 미야자키에게 세 개의 선율을 들려주고 그가 고른 왈츠라 전해지는 이 곡에서, 반복 음형이 오케스트라로 피어오르는 그 부풂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마지막은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서 나온 '기쿠지로의 여름(Summer)'. 미야자키의 따뜻함을 걷어낸 자리에 반복의 골격만 남을 때 그의 문법이 얼마나 단단한지 드러난다. 국내 무대에도 자주 오르는 세 곡이니, 이 순서로 걸으면 그의 입구가 활짝 열린다.